세계유산 사와룬토(Sawahlunto) 광산촌의 역사

사와룬토 광산촌의 역사

1917년에 발표된 반리엔(Van Lien) 보고서에 따르면, 서수마트라(West Sumatra) 사와룬토의 옴빌린(Ombilin) 강 유역의 시잔탕(Sijantang)과 파무아탄(Pamuatan) 지역 사람들은 강둑 표면에 드러난 석탄을 채집하여 요리 시 사용하고 심지어 광물을 판매했다고 한다. 훗날 네덜란드인들이 산업혁명을 위한 에너지 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훨씬 이전의 일이다.

그들의 활동은 분명 네덜란드 지질학자들이 서수마트라의 라나 미낭(Ranah Minang)의 석탄 매장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데 참고가 되었고 최초의 정보가 되었을 것이다. 그루트 판 엠덴(C. De Groot Van Embden)은 1858년부터 9년 동안 지질학자 드그레브(W.H. De Greve)와 함께 사전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마침내 1868년 옴빌링(Ombilling) 분지에서 석탄을 발견하고 1870년 네덜란드 정부에 그 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후속 연구로 베르빅(R.D.M. Verbeek)이 파람바한(Parambahan), 시갈룻(Sigalut), 루라가당(Lurah Gadang), 순가이 두리안(Sungai Durian) 및 렘바세가(Lembah Segar) 지역에 분포된 석탄의 품질을 밝혀내고 그 결과를 자세히 설명하는데 성공했다.

통합 메가 프로젝트 개발

사와룬토에서 발견된 산업혁명을 위한 에너지 자원의 힘은 네덜란드 의회에서 뜨겁게 논의되었다. 관리들은 어떻게 매장된 석탄을 채굴하여 동남아시아의 네덜란드 식민지의 지역의 확장에 사용할 수 있을지 고심했다. 향후 20년 동안 토론과 더 많은 연구 끝에 네덜란드 정부는 마침내 “쓰리인원(Three in One)” 이라는 통합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이 프로젝트는 (1) 광산 인프라 개발과 사와룬토의 광산 마을 개발, (2) 파당(Padang)의 풀라우 아에르(Pulau Aer) 역에서 시작하여 사와룬토까지 단계적으로 철도 네트워크를 개발, (3) 유럽으로 석탄을 운반하기 위한 벙커시설을 포함하는 엠마하벤(Emmahaven) 항구 개발이 그 것이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쓰리인원” 프로젝트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와룬토 석탄 광산 지역과 광산 마을의 형태이다. 둘째, 산을 통해 155km가 넘는 항구와 광산 지역을 연결하는 교량 및 터널이 있는 철도 시스템을 포함한 철도 인프라 및 기술 시설이다. 셋째, 수마트라 서부 해안에 위치한 엠마하벤 항구의 석탄 벙커 시설이 남아있다. 이것은 바다로 운송되기 전에 석탄을 저장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오늘날의 사와룬토 광산 마을

한 세기가 넘도록 사와룬토의 광산의 자원은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지역, 특히 서부 수마트라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기여했다. 이 외에도 심층 채굴 및 통합 인프라 개발의 기술적 성과는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채굴 활동 개발을 위한 모델이 되었다. 오늘날 채굴 활동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고 지만, 문화유적지의 형태(전통의 형태)로 이루어진 개발의 결과와 거기에서 얻은 경험은 지금도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사와룬토는 산업혁명의 효과의 증거이다. 채굴이 중단되었지만 광산 마을의 발자취는 서부 수마트라의 매력으로 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