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의 춤, 처용무

처용무 © 김태욱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음력 1월 1일의 전날인 섣달그믐1.이 되면 민간과 궁중에서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의식으로 나례(儺禮)를 행하였다. 나례란 묵은해의 잡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기원하기 위한 행사로 민간과 궁중에서 이뤄졌다. 민간에서는 집안의 잡귀들이 놀라 달아나도록 마디가 있는 청죽(靑竹)을 불에 태워 큰 폭음을 내었다. 조선 시대 궁중에서도 나례로 탈을 쓰고 제금(提金)과 북을 울리며 궁을 돌아다녔는데, 이날에는 궁중무 중 유일하게 인간의 형상을 한 탈을 쓰고 추는 춤을 추었다. 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처용무(處容舞)이다.

처용무는 처용설화를 기반으로 한다. 처용과 관련된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처용은 통일신라 헌강왕 때의 인물이다. 처용이 집을 비운 사이 처용의 처와 몰래 동침한 역신을 처용이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처용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났고, 이러한 처용의 태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역신은 그의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기로 맹세했다. 이후 민가에서는 처용의 형상을 대문에 붙여 역신을 몰아내고자 하였고, 처용은 벽사진경(辟邪進慶)2.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이러한 사연으로 처용무는 궁중 나례에서 빠지지 않은 춤이었다. 현행 처용무는 조선 시대 때 갖추어진 것으로 5명의 남성 무용수들을 통해 연행된다. 무용수들은 청·백·적·흑·황 오방색 옷을 입고 팥죽색 피부에 주석 귀고리·모란·복숭아 열매 등으로 장식된 처용탈을 쓰는데, 탈의 장식 요소들은 벽사와 진경을 상징한다. 처용무는 앞서 언급한 통일신라 헌강왕 시기에 발생 연원을 두고 전해져 오고 있으며 역사적 시원(始原)이 긴 만큼 풍부한 예술성과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이를 인정받아 2009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처용무는 약 1,100년 동안 민간과 궁중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춤·글·구전 등의 형식을 통해 다채롭게 확산하며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다. 오늘날 처용은 창작무용·애니메이션·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로 재창작되며 생동하는 ‘유산’으로도 향유되고 있는데, 처용이 가진 긴 생명력과 상징성은 주목할 만하다. 그 이유는 엄격한 내용과 형식을 지니며 소수를 위한 예술이었던 궁중무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매체 및 양식과 결합하고 있는 민속무와 대비되듯이 소극적으로 재현되며 대중들에게 더디게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과학과 의술이 발달하기 전 자연재해나 질병에 대해 취약했던 전통사회에서는 신년의 질병과 액운을 막고자 처용무와 같은 액막이 행사를 했다.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국가와 마을 단위로 액막이 의식을 지내지 않지만, 현대인들은 동짓날 팥죽을 먹거나 보신각 타종과 같은 송구영신(送舊迎新)3.의 통과의례(通過儀禮)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섣달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시기이다. 과거와 현대의 생활방식이 바뀌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형태와 방식은 다르더라도 한해를 잘 마무리하며 복을 기원하는 마음은 세기를 관통하는 바람일 것이다. 이러한 바람들이 모여 21세기의 처용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Notes   [ + ]

1. 그믐은 음력으로 달의 마지막 날을 의미하며, 섣달은 음력 12월을 의미한다. 따라서 섣달그믐은 음력 12월의 마지막 날을 가리킨다.
2. 요사스러운 귀신을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함.
3.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음.